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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05. 철학, 종교

인연 이야기 / 법정 스님

by 허니데이 2023. 11. 9.

불경에 있는 교훈적인 설화를 엮은 책입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읽으면 마음에 좋은 양식이 되리라 믿습니다.


기쁨과 슬픔의 뿌리를 찾아

이 책에 옮겨 엮은 이야기들은 모두 본연부에 속한 경전이다. <현우경>과 <잡보장경>은 불타 전기 비유문학의 정수로 알려진 경전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통속적인 이야기 속에 불교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법구비유경>은 경전의 이름 그대로 법구의 비유와 그것이 생겨난 인연을 말한 경전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소설 읽듯이 계속 읽어나가지 말고, 한편 한 편 그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비슷비슷한 주제와 이야기 전개에 식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읽는 사람이나 옮기는 사람이나 서로 덜 지루하도록 객담(주석을 가장한 군소리, 이른바 평석)을 넣었다. 이 책을 옮겨 엮으면서 바탕을 삼은 경전은 <고려대장경>과 <한글 대장경> 및 자타카이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 나라의 프라세나짓왕이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만 개의 등불을 밝혀 복을 비는 연등회를 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성안이 북적거립니다."
이 말을 듣고 여인은 생각했다.
'프라세나짓왕은 많은 복을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했으면 싶은데....'
여인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했다.

"저는 가난한 처지라 이 작은 등불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지혜의 광명을 얻어 모든 중생의 어둠을 없애게 하여지이다."
밤이 깊어지자 다른 등불은 다 꺼졌지만 여인의 등불만은 한결같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시자인 아난다는 손으로 불을 끄려고 했다. 그러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이 그 모습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부질없이 애쓰지 말아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므로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등불의 공덕으로 여인은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니라."
이 말을 전해 들은 프라세나짓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큰 보시를 하고 수만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저에게도 미래의 수기(예언)를 내려 주십시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법(깨달음에 이르는 올바른 법)이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닫기도 어렵소. 그것을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백천의 보시로도 얻기 힘든 경우가 있소. 그러므로 불법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여러 가지로 베풀어 복을 짓고,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오."
왕은 속으로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산이나 바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왕은 곧 수레를 준비해 부처님께 나아가 절을 올리고 말씀드렸다.
"바라문 네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자기들의 목숨이 이레 뒤면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저마다 죽음을 피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과연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소. 첫째는 중음 중음으로 있으면서 생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둘째는 한번 태어났으면 늙지 않을 수 없으며, 셋째는 늙어서 병들지 않을 수 없고, 넷째는 이미 병들었으면 죽지 않을 수 없소."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닷속도 아니어라.
산속도 아니고 바위 틈도 아니어라.
죽음을 벗어나 은신할 곳
그 아무 데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힘써야 할 일 내가 할 일
나는 이 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그 때문에 초조히 오가면서
늙고 죽음의 근심을 발고 다니네.

이런 줄 알고 스스로 고요하고
생사가 이미 끝났음을 알았다면
그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난 것
비로소 생사의 강을 건너게 되리.

*중음이란 중유라고도 하는데, 의식을 지닌 중생이 죽음의 순간부터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시기를 말한다. 이 기간이 49일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위해 49일 동안 명복을 빌고 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