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온전함은 불행의 치유제다.'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의 진실을 어디에 버렸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느 방향을 따라갔는지 알았을 때 비로소 불행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온전함에서 벗어난 분열은 대부분 무의식 중에 일어난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악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대부분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존중하는 문화에서 배운 대로 살아가고 모든 규범과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삶을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살아가는 끔찍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 가능하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수준의 기쁨과 목적의식으로 이끌어주는 방식이다. 나는 이를 온전함에 이르는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당신이 그 길로 가도록 이정표를 세워주고 동반자가 되어주고자 한다. 온전함에 이르는 방식에 따르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지금 어떤 감정이든 그곳에서 벗어나 의미와 환희, 매혹으로 가득한 곳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이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나 역시 온전히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끔찍했던 시간을 모두 겪은 후 온전함에 이르는 길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축복받은 삶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 길을 알기 때문이다.
제1막 어두운 과오의 숲
제3곡 스승 만나기
스승을 만나는 법
인생의 스승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단테는 최악의 순간, 인적 없는 외딴곳에서 우연히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유령을 만났다. 게다가 그 유령 시인은 단테에게 길을 안내해 줄 시간과 의향이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에서도 정말 일어난다. 나는 내 삶에서, 내 고객들의 삶에서 이런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광경을 수도 없이 봤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승이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 혹은 무언가 홀연히 나타나 도움을 주는 기적 말이다.
실제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읽으며 그를 처음 만났다. 독서는 내게도 인생의 스승 대부분을 만나게 해 준 방법이다. 내 고객들 역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말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이 책장에서 툭 떨어지듯 나타났다는 말을 자주 한다. 때론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누군가가 상담 치료소나 갱생시설, 요가원 혹은 지혜로운 스승을 만날 환경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더러는 팟캐스트나 온라인 강연에서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에 매료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설을 탐구하던 중 이야기 속 영웅이 모험을 받아들이고 길을 나설 때 곧 멘토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두운 과오의 숲을 정저 없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숲을 빠져나오려 노력했지만 기쁨의 산을 오르느라 실패했을 때, 고통스러운 감정이 야만스러운 짐승처럼 집요하게 덮칠 때 우연히 스승을 만나곤 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기에 앞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 어떤 스승도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지는 않다. 정신적 스승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의견을 들려주어 우리가 의식 깊숙한 곳에서 지혜를 찾도록 도와줄 뿐이다. 베르길리우스도 단테가 낙원에 이르는 모든 길을 낱낱이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온전함을 되찾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업쇼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스스로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영혼의 스승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진실을 감지하는 내적 능력을 찾도록 돕는 것뿐이다.
그렇긴 하지만 컴컴한 과오의 숲을 헤맬 때,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모를 때 꼭 필요한 존재가 스승이다. 그러니 스승이 누구인지 기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스승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승 알아보는 법
정신적 스승이 항상 우리의 예측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략) 어쩌면 당신의 스승은 책이나 노래, 심지어 동물이 될 수도 있다. 크나큰 깨달음을 재빨리 깨우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겪은 강렬한 경험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스승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보편적 원칙이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신적 스승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유형을 파악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영혼의 지도자처럼 구는 사기꾼에게 홀리지 않을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존재해야 하는지를 강렬하게 끄집어내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 이들이 정말 많다. TV에 출연한 지식인, 권위적인 전문가,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가족, 이제 막 새로운 종교에 빠진 친구, 인터넷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낯선 사람 등. 이런 사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강압적으로 조언하는 사람은 유능한 정신적 스승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기쁨의 산 정상에 데러 가 주겠다며, 아름답고 부유하고 유명하게 만들어주겠다며 그 대가로 전적인 헌신 혹은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삶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진정한 정신적 스승일 확률은 매우 드물다. 그래도 이런 이들에게 심장이 고동친다면 따라기라. 하지만 이때 요동치는 심장은 진심이 아니라 당신이 그의 타깃이 되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정한 정신적 스승은 정신을 쏙 빼놓은 말솜씨가 아니라 마음의 끌림으로 사람을 움직인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정신적 스승은 다음과 같다.
나의 생각과 관심을 사로잡는다.
진정한 스승과 조우할 때 괴이한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를 만나면 마음이 설명할 길이 없이 이상하게 끌리기 때문이다.
마법처럼 홀연히 나타난다.
조지프 캠벨은 영웅담 속 영웅이 운명이나 마법 혹은 신성한 힘에 이끌려 스승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신적 스승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우연이 잇따라 일어나거나 이상할 정도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스승과 제자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를 깨우는 순수한 사랑을 베푼다
'정신적 스승'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위안이 되고, 우리가 잠들 때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줄 것 같은 편안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신적 스승은 우리를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과오의 숲을 몽유병처럼 헤매는 우리를 깨운다. 그래서 뜻밖에도 소란스럽거나 충격적일 수 있다.
대부분은 몇 년이 흐른 뒤에야 그런 행동들이 깊은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많은 사람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파리를 향한 거미의 탐욕스러운 갈망처럼 사용하고 한다. 거미는 진심으로 파리를 사랑한다. 거미는 파리를 거미줄로 칭칭 감아 붙잡아둔 다음, 가까이서 지켜보다가 조금씩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부모나 친구, 연인을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나는 이런 사랑을 '거미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솔직히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일 뿐이다. 정신적 스승은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구속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어둠의 숲에 붙잡아두지 않는다. 진장한 사랑은 항상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 한다.
진정한 스승이 우리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주려고 돕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진정한 스승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우리를 덜그럭 덜그럭 흔들고, 불편하게 하고, 진정제를 빼앗아 버린다.
하지만 이때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하는 그 존재가 겉보기에는 가혹하고 냉정해도 어쩌면 가장 순수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반문화적이고 때로는 기이하다
우리는 문화적 가치관을 따라 진정한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온갖 종류의 기쁨의 산을 오르려고 애쓴다.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들을 쫓아다니느라 지치고 만다. 정신적 스승은 우리가 이런 과오에서 벗어나도록 특정 문화적 망상에서 깨어는 것을 돕는다.
따라서 진정한 스승은 '반문화적'인 존재다. 이들 중에는 예측 불가인 사람도 있고, 문화권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이고 길들지 않은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상하고 무례하고 반사회적인 사람이 모두 정신적 스승은 아니다. 진정한 정신적 스승의 반사회적인 모습은 매우 특별하다. 그들은 우리의 기존 전제들을 뒤흔들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해 준다. 이와 반대로 그저 횡설수설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이해 보이기는 하지만 빠져들 만한 매력도 없고 우리 마음의 지평을 넓혀주지도 않는다.
노오력에 신경 쓰지 않는다
정신적 스승은 문화권 밖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노오력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다정한 행동을 침 튀어가며 칭찬하지도 않고, 세상 물정에 밝은 우리의 지식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도 않는다. 우리의 희생정신이 돋보이는 미담에 달콤하게 위로해주지 않으며 우리의 부와 지위에 굽신거리지도 않는다. 만약 그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준다면 그들은 고맙다고 말한 뒤 곧장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다. 어떤 아첨이나 술책, 짜증도 그들이 가는 진실의 길에서 단 1밀리미터도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도록 도와준다
정신적 스승은 우리의 맹목적인 질주를 막아줄 뿐 아니라 우리가 헛된 곳에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준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임금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마치 임금의 옷이 눈에 보이는 척한다. 엄마가 아편을 지나치게 많이 복용하지만 가족에게 더 중요한 건 엄마가 아편중독이라는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이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되, 모든 사람이 그 거짓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신적 스승은 이런 규범을 위배한다. 그는 이 암묵의 규범을 깨고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사실을 말하라고 한다.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침묵해야 할 때를 안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그를 죽여라." 선불교 임제 선사의 말이다. 이 말은 정말 길에서 승려를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영혼의 스승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나태한 어린아이처럼 스승의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해서 오직 한 사람, 하나의 관념으로 대표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과 모든 아이디어를 다 아우르는 사상으로 대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를 죽여라.'라는 말은 어떤 스승이든 그의 모든 것을 배워 그를 초월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배웠던 진실과 깨달았던 거짓 모두를 활용할 수 있다. 진정한 스승은 이 사실을 반복해서 끈질기게 가르친다. 우리 자신이 신념의 초종 결정자이며 그 결정에 필요한 분별력을 갖도록 도와준다. 내가 좋아하는 인도의 현자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는 이렇게 말했다. "외부의 스승은 길가의 이정표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지까지 함께 걷는 것은 자기 안의 내적 스승이다. 내적 스승이야말로 그 목적지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안내자를 찾아서
지금까지 외부에서 정신적 스승을 찾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내면의 스승이자 우리의 목표인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궁극의 스승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함께할 것이다. 단테는 <신곡>을 쓰면서 상상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혼령을 만들어냈다. 작중 인물인 단테에게 길을 안내한 이는 사실 단테가 만들어낸 존재이자 그의 일부였다. 내면의 스승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이도, 더 오랫동안 함께할 이도 없다.
그런 내면의 스승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를 지칭하는 표현은 많지만 지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아우르는 것은 딱히 없다.
이 책에서 나는 내면의 스승을 '온전함'으로 부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본성', '본질 그 자체' 등의 표현도 사용할 것이다.
외부의 스승을 도무지 찾을 수 없을 때도 내면의 스승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그를 만날 때 우리는 가슴속에서 진실의 울림을 느낀다. 따라서 진실을 몸과 생각과 마음과 영혼 모두가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내면의 스승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일단 진실을 깨달았을 때 '몸'의 반응은 편안함이다. 말 그대로 몸의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이완된다. 아무리 어려운 진실이라도 받아들이는 순간 몸이 이완되고 호흡이 깊어진다.
우리의 '생각'이 진실을 감지했을 때는 머릿속 전구가 환하게 밝혀지며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해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하!', '알았다!', '그렇지!' 하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을 느낀다.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착착 맞아떨어진다.
힘겨운 진실의 고통을 느꼈을 때 현실에 맞춰 이를 이완해 주는 것이 바로 '정신'적 반응이다. 감정덩어리와 감정 너머에 있는 해방감이 느껴지면서 모든 경험을 향해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든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우리를 감싼다. 고통의 공간도 있고, 기쁨의 공간도 있다. 모든 감각이 일어나는 공간은 절대적 행복으로 이뤄져 있다. 그 공간은 모든 것, 심지어 고통마저도 유용한, 완벽하고 비옥한 무의 지대다.
외부의 스승은 우리에게 진실의 감각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내면의 스승은 몸과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울린다. 예를 들면 나는 이 책이 온전함으로 가는 당신의 여정에 유용한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도 진실의 울림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말을 무시해도 좋다. 내 말을 듣지 마라.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든, 사제든, 태권도 관장이든, 시장이든, 배우자든 똑같이 하라. 진정한 정신적 안내자라면 당신의 내면의 스승에게 머리 숙여 인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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