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독자에게 말하건대, 이 책은 단순한 티베트 여행기가 아니다. 진리를 드러내며 말잔치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 쾌락을 주려는 것도 아니므로 지성의 관점으로 다가서지 말기를, 또 새로운 종교나 권위나 믿음의 멍에를 씌우려는 것 역시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다만 갇혀 잠들어 있는 내적 존재를 풀어주고 깨우려는 것이다. 참자아의 권능과 가능성을 자각하게 하고, 당신이 제한된 삶에 갇힌 왜소한 인격체가 아니라 온 우주 활동의 중심이며 우주의 힘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이 더 이상 운명의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자로 각성해 조악한 신체가 규정하는 왜소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 책은 당신을 관념과 이상의 모든 정신적 구조물 너머로 데려갈 것이다. 마음이 현재 취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이 책은 신적 의식의 초월적 힘을 무지한 마음으로 가져가 몸과 마음을 변형하고 그 결과로 신적 생명을 물질 안에 창조하는 법을 보여준다.
비평가들에게 말하건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비평하지 말라. 당신이 고수하는 신념으로 인해 내가 말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마음을 열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2장
린포체는 우리가 나누는 내용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주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한 지성은 늘 존재하고 있다네. 사람이 그것을 담아낼 준비만 되면, 현재 우리가 어슴푸레 꿈만 꾸는 일들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지. 온 우주에 두루 작용하는 지성은 지금 여기에도 작용한다네. 지성의 드러남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우리 자신밖에 없어. 하지만 사람이 준비되면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그를 통해 일어날거야. 사람은 지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구심점이지. 무소부재한 전지함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전능함은 얼마나 강력한가!
우리가 몸을 떠나도 생명은 끝나지 않아. 몸 안에 있는 생명과 우주에 있는 온 생명 사이에는 분열도 분리도 없지. 생명은 하나이며, 소위 죽음이라 부르는 것도 생명을 가르거나 분리하지는 못한다네.''
깊은 고요가 찾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 안에 잠겼다.
3장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은 삼예 사원이다. 삼예 사원은 수백 년 전에 마법을 부릴 줄 알았던 파드마삼바바가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근처 말그로 호수의 정령들을 일으켰고, 거대한 바위를 쪼아 만든 비밀 보관 장소에 있던 엄청난 양의 금과 보석을 가져오게 했다. 금과 보석을 품고 있던 바위 위에 지금의 사원이 세워졌다. 이 광대한 보물 창고들은 수백 년 동안 고스란히 보존되어왔다.
린포체는 이렇게 말했다. ''이에 대한 내 견해를 말하자면, 파드마 샴바바는 라마승들을 시켜 산에서 금광을 파고 근처에 있는 호수를 뒤져서 진귀한 보석을 찾은 것 뿐이라네. 티베트 전역을 통틀어 이 지역이 보석 매장량이 가장 많거든. 찾은 금과 보석은 무조건 사원에 갖다 바쳐야 하지. 헌납하지 않고 개인이 소유하면 성물 절도에 해당해. 그래서 사원은 그토록 호화로운 반면 사람들은 철저히 가난한 거라네.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듣는 대로 여과 없이 받아들이지. 아주 극소수만이 혼자 힘으로 생각해서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서양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사람들은 거짓에 빠진 채 진실을 찾으려 하지. 하지만 거짓은 그것을 제대로 직면할 때까지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직면한 후에라야 사라질 거라네. 거짓은 진실을 담을 수 없고, 무지는 이해를 담을 수 없는 법이지.''
5장
예수는 위대한 스승이었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일들을 많이 행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가 사용한 권능은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쭉 존재할 것이니, 그 힘은 영원하고 늘 현존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견고하다는 생각과 우리가 무능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도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예수는 이 점을 알았기에 ''너희도 이해하기만 한다면 내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또 그는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언덕이 바닷가 풍경을 가리고 있는 곳에 사는 한 여인의 믿음 같아서는 이 산더러 번쩍 들려 바다에 빠지라고 말하더라도 그대로 이뤄질 것이다''는 구절을 떠올리고는, 창문 앞에 서서 언덕을 바라보며 ''언덕은 번쩍 들려 바다에 빠질지어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창문 앞에 섰지만 언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어. 이 언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야''라고 절규했다.
치유의 기적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세계 방방곡곡에서 줄곧 일어났다. 불치병이라고 하는 수천 가지 사례가 믿음이라는 요인으로 낫는 일은 흔히 벌어진다. 내가 치유했다고 알려진 사례만 해도 수천, 수만 건에 다다른다. 그러나 나는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을 하시는 분은 아버지의 영이시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치유자 안에 있는 생명과 환자 안에 있는 생명은 같다.
이 말은 상투적인 문구로 그쳐서는 안 되고 시간, 관념, 마음을 넘어서 지금 이 순간 생동하는 경험이라야 한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그것에 대한 관념이나 믿음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인 것은 아니다. '신'이라는 단어가 곧 신 자체는 아니다. 자기 마음 안에서 신에 대해 지어낸 것은 신이 아니다. 말, 관념, 믿음이란 허구가 실재를 가리고 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실재는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시간에 속하지 않은 현존이 당신의 모든 순간에 새로워질 것이다.
지나간 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은 부질없다. 지나간 순간은 이미 기억이 되었고 기억은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란 영원한 현존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미지를 지어낼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 따름이다.
그것이 다시 찾아오기를 상상하는 것은 마치 결코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내일은 항상 내일이다.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은 항상 현존하고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결코 그것을 깨달을 수 없다. 그것을 살아낼 때라야 그것은 비로소 경험될 수 있다.
지금 그것으로 존재하라! 영원한 현재에 머물며 순간순간을 살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함으로써 지금을 매 순간 경험하는 것이 곧 실재이다. 그 순간에는 옳고 그름도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영원한 '지금'만 존재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그러므로 실재가 들어서기에 앞서 이를 가로막고 있는 자아는 반드시 소실되어야 한다.
''내가 곧 생명이고, 생명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실재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이웃 안에 있는 당신의 진정한 자아도 사랑해야 한다. 실재 안에서 분리란 없기 때문이다.
6장
자신의 욕망 대신 위대한 힘을 나침반으로 삼는 자들은 모든 일이 먼저 일어나는 법도 없고 늦게 일어나는 법도 없고 늦게 일어나는 법도 없이 제때 일어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운명론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주를 세우고 다스리는 위대한 지성이 사람 안에도 틀림없이 있음을 인식한 것일 뿐이다. 사람은 신의 지성과 의식의 살아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신은 당신 뜻에 따라 인도하고 드러내며 본성상 무한하다.
''오 주여,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을 이루소서.''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했으니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7장
그때쯤 우리는 사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글로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기묘한 내용이라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무지와 편견에 빠진 자들은 믿지 않겠지. 하지만 이 메시지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몸을 초월한 자들과 지상에서 이 메시지를 보고 듣기로 선택된 자들을 위해 의도된 거야. 이 메시지는 앞으로 토씨 하나도 빠짐없이 적힐 것이라네.''
8장
내 벗은 스승의 지위를 나타내는 법복을 둘렀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심오했다. 그는 게쉬 린포체와 같은 수준이었다.
내 벗은 맑은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아주 중요한 내용을 전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모두는 귀를 기울였다.
내 벗은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마음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네. 종교를 창조한 것은 사람이지만 정작 종교가 사람을 지배하고, 문명을 창조한 것 역시 사람이지만 문명이 도리어 사람을 약탈하고 있지. 자신을 인도해줄 무언가를 본인이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네. 그래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아.''
''많은 사람들이 통합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분열과 분리에 집착하지. 그들은 자신어 신조, 국적, 종교적 믿음, 정치적 차이를 포기하기를 거부해. 이미 이런 것들이 그들을 묶고 있어서 그것들이 거짓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네.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것은 종교든 국적이든 관념이든 믿음이든 죄다 거짓일 수 밖에 없어. 실재 안에서 분열이란 결코 없기 때문이지.
그들은 평화와 자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도나 명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그래서 그들은 평화라는 관념, 자유라는 관념을 두고 명상을 하지만 도리어 더욱 구속돼버린다네. 자기 마음에 있는 것들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묶여 있는지 또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명상을 하든 기도를 하든 다 부질없는 일이야. 무엇이 분리를 일으키는지 모른다면, 일치든 평화든 자유든 무슨 이름을 갖다 붙이든 죄다 관념에 불과하다네.''
나는 ''게쉬 린포체와 거의 비슷하게 말씀하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자유로 이끄는 유일한 길은 그가 어떻게 묶여 있는지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네. 나는 자네를 해방할 수 없어. 자신을 해방하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할 수 밖에 없네. 그때라야 자네는 모든 창조물 배후에 있는 강력한 창조적 권능을, 자네 마음 너머에 있는 사랑과 지혜를 발견할 거야. 그것은 자네 마음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현되지. 하지만 마음이 거짓된 것들로 꽉 차 있다면 어찌 그것이 마음을 통해서 현현될 수 있겠나? 그때 자네는 사랑과 지혜와 그리스도 영의 권능이 아니라 자신의 제약된 상태를 표현할 뿐이라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자네 마음은 주 예수의 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깨끗이 치워져야 해.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조건을 표현하게 될 뿐이니. 자네가 이곳을 떠난 후에도 아직 자네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정도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자네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 속에서 수년간 수련을 계속해야 해. 마음이 날조한 것은 진리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자네를 준비시키고 있다네. 이 연습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해나간다면, 자네 마음은 자네가 이곳에서 갑절의 기간 동안 더 머무는 것보다도 깨끗해질 거야. 자네가 세상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자네를 도울 걸세. 자네만 돕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돕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도울 거야.''
또 한 번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제 말보다는 위대한 성인들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봐요.''
''자네는 이 일을 위해 태어났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우리 운명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 마디조차 땅에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가 답변할 때마다 말문이 막혔지만,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 싶었다.
''음, 그러면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없는 거네요.''
''아닐세. 자네는 외부의 강요를 받는 게 아니라 내부로부터 피어난 갈망을 따르고 있을 뿐이야. 그 갈망은 이제 열망이 되어 자네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단단히 내릴 걸세.''
''그런 경우라면 운명의 나침판이 저를 어디로 이끈다 하더라도 그 일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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