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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03. 마음과 영성, 명상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아니타 무르자니(4)

by 허니데이 2022. 12. 31.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웨인 다이어 서문/ 황근하 옮김/ 샨티


17. 허용하는 삶

임사 체험을 하기 전까지 나는 늘 삶의 안내를 받고자 바깥을 찾아 헤맸다. 그것은 동료나 상사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이기도 했고, 그저 단순히 다른 이들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다른 이들이 정해 주는 의견이나 조언, 가르침과 법을 그것이 좋게 느껴지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따랐다.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의식 儀式과 가르침을 고수할 때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맞고, 내가 모르는 건 그들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임사 체험 중에 나는 이처럼 외부의 온갖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혹시 몰라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우주의 생명력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에너지적 존재라면, 우리를 위해 대신 결정을 내려주거나 우리에게 어떻게 에너지를 높이거나 낮추라고 일러줄 어떤 외부 시스템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장엄함에 연결되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실천하고 교리를 따르는 등 뭔가를 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기쁘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필수 사항은 아니다. 그저 내면의 안내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찾던 올바른 방법을 비롯해서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오직 사랑의 중심에 자기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옳은 길 위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한한 전체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장엄함을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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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 나는 그 느낌을 그대로 허용한다. 감정을 꼭꼭 담아두는 것보다는 그런 감정을 생생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내 느낌에 저항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냥 '허용'한다는 말이다. 판단 없이 허락하는 바로 이 행위가 자기 사랑의 행위이다. 이 처럼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행위가 거짓으로 긍정적인 척하는 것보다 삶을 훨씬 더 즐겁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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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동시성과 끌어당김의 법칙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것들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노력 없이도 제때 나타난다는 생각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는 '끌어당긴다 attract'는 표현보다는 '허용한다 allow'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우주와 하나이고,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장엄한 자아가 되는 것이며, 외부 세계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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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이란 '놓아버림 release'에 가깝다. 놓아버린다는 건, 모든 것이 하나이므로 내가 얻고자 하는 그것이 이미 내 것임을 깨달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허용의 과정은 먼저는 신뢰하는 데서, 그다음은 자기 자신에게 늘 진실해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할 때 나는 오직 진실로 '내 것인 것을 끌어당기게 되며, 모든 것은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속도록 일어난다. 나는 걱정되는 것 혹은 내가 부족하거나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만 계속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내 살미 내가 경험하고 싶어 하는 쪽으로는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금 모습 그대로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경험을 신뢰하고 허용함으로써 내 의식을 넓히기보다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나를 화나게 하는 것, 뭔가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얼마나 빨리 걱정들을 놓아버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완되기를 원하느냐에 따라서, 그림을 현실화하는 것을 더 느리게도 할 수 있고 더 빠르게도 할 수 있다. 특정 사고방식이나 결과에 더 집착하면 할수록, 혹은 새로운 모험을 겁내면 겁낼수록, 그 전재는 더욱 느려질 것이다. 내가 과정에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에너지가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간의 태피스트리는 이미 짜여있고 따라서 내가 내 삶에서 일어나기를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은 저 무한한 비물질적 차원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이라곤 이 무난한 영역으로 흘려들 수 있도록 지구 차원에 있는 내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이 전부이다.

내가 바라는 걸 애써 추구하면 오히려 분리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그와 달리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이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내가 바라는 것이 이미 내게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