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03. 마음과 영성, 명상

옴니 : 자기 사랑으로 가는 길/ 저자 존 페인(1)

by 허니데이 2024. 3. 1.

이 책은 채널링 기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채널링은 영매가 망자 또는 영혼과 접촉해서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저자 존 페인은 영적 수련을 통해 채널링을 하게 되었고 영적 스승 옴니 임마누엘과 만나게 됩니다. 옴니는 우주가 지구로 보낸 영적 스승으로, 저자의 몸을 빌어서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특별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들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깊이 알지 못합니다. 부와 성공의 법칙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알기만 할 뿐이죠.



서문


옴니의 말을 인용하자면, "두 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첫째, 당신은 깊고 아름다운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둘째, 당신은 자신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이 진실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물리적이든 비물리적이든 그 당사자의 경험에 기반을 둔 인식일 뿐입니다."

이 책은 6년이란 시간 동안 여행을 하고 채널링 하면서 얻은 경험을 집대성한 작품입니다. 모험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나는 금연을 하기 위해 최면 치유사를 찾아갔습니다. 첫 최면 치료를 받고 난 후 갑자기 내 안에서 영적 능력이 깨어났고, 유체이탈 경험과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3년 1월의 어느 날, 놀라운 책 한 권이 우연히 내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나야 로만과 듀안 팩커가 쓴 <채널 열기 Opening to Channel>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나는 새나야와 듀안과 함께 '빛의 몸 Light Body'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직접 '빛의 몸'에 대해 가르치게 되었고,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채널링을 하게 되었습니다.(중략) 이 책에 나오는 질문들과 옴니의 대답은 지난 6년간 내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해답을 전달해 준 옴니에게 무한한 기쁨과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가슴을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닫혀 있었던 마음이 열리고, 좀 더 깊은 수준에서 받아들임의 경험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기쁨이 넘치는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세상이 모든 것이 괜찮고 좋다는 것 All is well, 무엇보다도 사랑이 넘쳐난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입니다.

1장. 옴니는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


우주는 광대하고 복잡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차원과 수많은 세상, 수많은 현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비물리계를 묘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려봅시다. 첫째, 우주에는 '물리계', '감정계 Astral planes', '정신계 Causal planes', '영계 Spiritual planes'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주요한 세 가지 비물리적 차원 안에는 많은 수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중략) 편의상 지금 우리는 세 개의 비물리적 차원인 아스트랄계, 정신계, 영계에 대해 말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계를 좀 더 나누면 '상위 정신계', '그리스도계', '붓다계'로 나눠집니다.

우리는 옴니 Omni인데, '그리스도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과 '붓다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의식의 다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의식은 모든 생명과 하나 됨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고, 감정적으로도 하나 됨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붓다 의식은 모든 것이 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모든 생명과 하나 됨을 마음속에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 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이런 수준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경험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나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모두 같은 창조물 stuff이며, 하나임을 압니다."

당신은 부처를 경험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의식과 붓다 의식의 본질적인 차이점입니다. 어느 의식이 다른 의식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초점을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가 다를 뿐입니다. 전체로서의 당신이라는 존재가 물리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의식 사이에 다리를 만들며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개념들을 전달합니다.

우주는 진동의 공간입니다. 당신이 집중하는 대상을 바꾸면 당신의 진동수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당신이 이제껏 하던 일에서 시선을 떼고 뭔가 새로운 것으로 관심을 돌릴 때, 그 새로운 것과 정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도 우리와 같은 비물리적인 존재를 초대해서 비록 작은 공간이나마 당신이 집중하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은 당신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죠.

우리는 343명의 다차원적 존재로 구성된 그룹 의식이지만 마치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당신에게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하나의 존재로,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로, 하나의 통합된 의식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우리 그룹에겐 대변인이 있는데, 우리는 그를 옴니 임마누엘 Omni- Emmauel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변인은 전달자이며, 우리 그룹에게 집중하는 존재이며, 그는 우리를 옴니라고 생각합니다.

3장 어떻게 하면 판단을 멈출 수 있을까요?


모든 영성 철학은 우리에게 비非판단적 자세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판단을 멈출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왜 그래야만 하죠?

사랑의 법칙은 모든 창조 및 당신이라는 존재의 근간이며, 신이라 불리는 '통합적 의식의 장'의 본질입니다. 생명의 목적을 바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가장 진실한 본성은 창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창조를 통해 당신은 진정한 당신 자신을 좀 더 드넓게, 심오하게,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은 곧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정의되는 모든 것은 신의 본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수용입니다. 사랑은 존재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영적 스승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언급할 때 이야기해오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영적으로 진화된 존재가 추구하는 목표라면, 수용과 허용은 그러한 진화적 과정의 일환입니다. 우주는 공정하고, 공평하고, 균형 있고, 온전히 사랑이 넘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에서도 전적으로 허용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우주는 지금의 당신 모습은 물론 당신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온전히 허용하고 받아들입니다. 인류는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신, 당신의 행동에 대해 벌하거나 상주는 신을 창조해냈습니다. 만약 신이 진짜 그렇다면, 당신이 창조해낸 신은 사랑의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신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존재라면 특정한 것을 수용하길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신은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할 수도, 실천하지도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고 환경을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만약 당신이 두려워하고 못마땅해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고 두려워하고 방어하는 대신에 원하는 것은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면, 당신의 환경은 당신이 원하는 것과 천 배는 더 가깝게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저항할 때 생명의 에너지가 흘러들어오는 것은 막게 되며, 이는 결국 원하는 것을 삶 속으로 끌어당겨오는 당신의 능력을 감퇴시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은 비판단적 태도입니다. 다른 '비판단'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고, 바람직한 영적인 상태로써 그것은 바라볼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비판단적 상태에 있고 싶어 했던 이유가 단순히 그것이 '영적'인 존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영적인 스승들이 실제로 전하고 싶었던 내용은, 사랑과 허용으로 끌어당김의 법칙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알았다면, '당신의 판단이란 실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당신의 판단이나 저항은 자신이 창조자임을 모른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자신의 경험을 창조한다'는 이 사실을 절대적 진실이라고 확언합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당신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음도 분명히 말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삶 속에 끌어당기지 않는 이상에는 그렇습니다.

'판단하지 않음'은 당신이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사실은 명확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판단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옳고 그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 창조자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판단을 싫어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판단을 할 때마다 자신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판단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은 당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저항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그 사람을 끌어당기지 않는 이상에는 그렇습니다. 모두 당신이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판단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