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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03. 마음과 영성, 명상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류시화 옮김, 연금술사(4)

by 허니데이 2022. 8. 18.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네 번째 이야기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에고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에고가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고는 우리가 깨달음으로 의식이 옮겨갈 때 소멸될 운명입니다. 따라서 에고는 우리가 초월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 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3. 마음이 만드는 드라마- 에고를 초월하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것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 목소리- 자기도 모르게 쉽 없이 일어나는 강박적인 생각의 흐름과 그것에 동반하는 감정들-와 너무도 완전히 동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마음에 소유당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당신은 그 생각하는 자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것이 에고가 지배하는 마음이다.
에고가 지배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모든 생각, 즉 모든 기억, 모든 해석, 의견, 관점, 반응, 감정 속에 '나(에고)'라는 자아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무의식이다. 당연히 당신의 생각, 다시 말해 당신 마음속 내용물은 성장 배경, 문화, 가족 배경 등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다. 모든 마음 활동의 중심을 집요하게 반복되는 생각들, 감정들, 반응 형태 등 당신이 강하게 동일화되어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독립체가 에고 그 자체이다.

에고의 내용물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에고에는 동일한 구조가 작용한다. 다시 말해, 에고는 단지 표면에서만 다를 뿐 깊은 아래서는 모두가 같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같은가? 에고는 동일화와 분리를 먹고 산다. 당신이 생각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마음이 만들어낸 자앙, 즉 에고를 통해 살아간다면, 그 정체성의 기반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생각과 감정은 본래 변하기 쉽고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고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확장하려고 노력하면서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나'라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에고는 그 반대 생각인 '남'이 필요하다. 개념적 '나'는 개념적 '남'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남'은 내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할 때 가장 확실한 '남'이 된다.

불만과 분함


불만은 에고가 자기를 강화하기 위해 선호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모든 불만은 마음이 만든, 당신이 완전히 믿고 있는 작은 이야기이다. 불만을 큰 소리로 말하든 단지 생각 속에만 하든 차이가 없다. 자기와 동일시할 것을 그다지 많이 갖고 있지 않으면서 불만만으로 즐겁게 생존하는 에고도 있다. 그런 에고의 포로가 되면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습관이 되고 당연히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분함을 불만과 함께 따라오는 감정이자 사람들에게 마음속 분류표를 붙이는 일이며, 이것은 에고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보태준다. 분함은 억울해하고, 분개하고, 자신이 부당하게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탐욕, 부정직, 진실성, 부족,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것과 과거에 한 짓, 그들이 말하는 것, 그들이 하지 않는 것, 했어야 하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등에 대해 계속해서 분개한다. 에고는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에고는 다른 사람들의 무의식을 눈감아 주지 않고 그것을 아예 그들의 정체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바로 당신 안의 무의식, 즉 에고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맞대응과 원한


분함은 불만과 종종 붙어 다니는 감정이지만, 때로는 그것보다 더 강한 분노나 그 밖의 감정적 흔들림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분함을 더 강력한 에너지로 충전된다. 이때 불만은 에고가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또 다른 방식인 '대응'으로 바뀐다.

오래 지속된 분함은 원한이라고 불린다.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영구적으로 '대립'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원한은 많은 사람들의 에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집단적인 원한을 국가와 부족의 정신 속에 몇 세기 동안이나 남아 있을 수 있으며,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에 기름을 붓는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게 만들기


잘못 찾아내기와 맞대응과 마찬가지로 불만도 에고의 생존이 딸린 금 긋기와 분리 의식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불만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에고를 강화한다. 에고에게 우월감을 주는 것이 그것이다. 우월감은 에고가 커질 수 있는 토대이다.

불만을 말할 때, 당신은 자신은 옳고 불만과 거부반응의 대상인 그 사람이나 상황을 잘못되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만큼 에고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옳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 의견, 판단, 이야기 등과 같은 정신적 입장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기 위해서는 당연히 틀린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고는 옳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틀리게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꿔 말해, 자신의 더 강한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틀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환상이 자신을 방어한다


에고는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 감정이 일어나고, 방어 심리와 심지어 공격성까지 나타난다.

모든 에고는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사실 그 자체와 혼동한다. 더 나아가, 객관적인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모든 에고는 선별적으로 인식하고 왜곡되게 해석하는 데는 달인이다.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알아차림을 통해서만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진리-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검증 가능한 단순한 사실들의 경우는 별도로 하고,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고 확신하는 것은 개인의 인간관계뿐 아니라 국가, 민족, 종교 간의 상호관계에서도 위험하다.

모든 종교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똑같이 틀릴 수도 있고 똑같이 옳을 수도 있다. 그것은 에고를 위해 봉사시킬 수도 있고, 진리에 봉사시킬 수도 있다.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을 에고에 봉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사용할 때 종교는 이념이 되고, 사람들 사이에 편가르기와 갈등뿐 아니라 우월감이라는 환상을 심는다. 진리에 봉사할 때 종교적 가르침들은 깨달은 존재들이 남긴 표지판과 지도가 되어 다른 사람들도 영적으로 깨어나고 형상과의 동일화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도울 것이다.


에고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집단 차원에서,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라는 사고방식은 국가 간, 인종 간, 미족 간, 종교 간, 이념 간의 갈등이 오래되고 극단적이며 고질적으로 일어나는 세계 분쟁 지역에서 특히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대립하는 당사자들은 어느 쪽이든 자신들의 관점, 자신들의 이야기와 동일화되어 있다. 즉 자신들의 생각과 동일화되어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 자신들과 다른 관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 역시 타당할 수 있음을 보지 못한다.
'우리'대 '그들'이라는, 집단 측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에고와 그 작용 방식은 동일해도 훨씬 더 광기 어린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서로에게 가한 폭력의 상당수는 범죄자와 정신 이상자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극히 '정상적인' 훌륭한 시민이 집단적 에고에 봉사하며 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 행성에서는 '정상'이라는 것이 '정신 이상'과 동일한 의미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 정신 이상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생각과 감정과의 완전한 동일화, 즉 에고이다.


에고를 넘어 - 진정한 정체성


에고가 전쟁을 할 때,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에고는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 에고라는 환상은 자기야말로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것을 지켜보는 '현존'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에고가 생존하려고 싸우는 분위기에 있고, 과거로부터의 몇 가지 감정들이 되살아나 있는 상태에서는 특히 어렵다. 그러나 한번 그 감각을 맛보면, 이 순간에 머무는 '현존'의 힘이 강해지고 에고는 구속력을 상실할 것이다.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에고를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알아차림과 에고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이다. 우리가 그것을 '현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은 당신의 목적이기도 한데, '현존'의 힘을 세상 속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이것은 또한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 존재함'만이 당신을 에고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며, 당신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현재의 '지금'에만 존재할 수 있다. '현존'만이 당신 안의 과거를 해체시키고 당신의 의식상태를 변화시킨다.


핀터레스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