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저자의 왕성한 독서력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을 매일, 1000일 꾸준히 쓰는 것도 한 방법이죠.
하지만 저자는 책읽기가 우선이다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어야 글 쓰는 데 필요한 소재를 무궁하게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책읽기와 글쓰기는 하나라고 합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글에 대한 애정이 솟구쳐서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죠. 즉 글쓰기에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책 읽기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한 번 더 강조하자면, 글쓰기를 위한 필수조건은 책 읽기입니다.
그럼, 저자의 글을 읽어 봅시다.
[밀실 - 글쓰기를 위한 책일기]
'타인의 삶'이라는 책
책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저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것들을 사유와 인식을 통해 숙성된 이야기로 담은 것이 책이다. 우리를 책읽기로 내모는 것은 남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엿보려는 왕성한 호기심과 지적 열망, 그리고 정서적 공감의 즐거움들이 한데 뭉쳐서 만든 욕구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들은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렇게 우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온 이야기의 힘에 의해 망각되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여기서 기억이란 바로 삶의 다른 이름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겹쳐질수록 우리 경험의 시공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책읽기는 즉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몇 겹의 사람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이 기억(이야기)을 통해 두 번째 삶과 만난다. 실제 경험으로서의 삶은 이 두 번째 기억(이야기)의 삶을 통해 더욱 생생한 것으로 거듭난다. 이것이야말로 책읽기가 만들어낸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으로 이 경이를 한 번이라도 겪은 사람들은 그 마법과 같은 경험의 세계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서 책읽기를 선택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기보다는 본능이자 운명이다. 책읽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제 삶의 작은 틈새들과 주름들 안으로 숨어서 남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자들이다.
'책읽기'에서 '글쓰기'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작가가 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책읽기는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남보다 책을 많이 읽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이란 족속은 책을 쓰는 존재이기 이전에 책을 읽는 존재이다. "닥치는 대로, 손에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순서와 체계도 없이 책에 바져들었던 독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이전에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글쓰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다음 글을 읽으면 글쓰기가 두려워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입구-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두 겹의 굶주림
평생 글을 쓰며 사는 일은 가난이라는 처마 끝 가장자리에 살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은 작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관문과도 같다. 가난은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각오가 없다면 애초에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작가의 길이란 지난한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역경이 바로 가난, 그것도 꽤나 심각한 현실적인 장애라고 할 수 있는 '굶주림'이다.
작가가 되려면 굶주림과 싸워야 한다. 작가가 견뎌야 하는 굶주림은 두 겹이다. 첫 번째는 물리적 굶주림이고, 두 번째는 영혼의 굶주림이다.
굶주림은 몸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도의 자양분을 얻지 못한 채 영양실조에 이르게 하는 결국은 사람을 죽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위장을 채우지 못하면, 그 굶주림 역시 사람을 상징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를 포만감에 이르게 하는 것은 음식물이지만 영혼의 위장을 채우는 것은 말[인식]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인식은 동일한 것이며 음식과 말은 각각 들어오고 나가는 지점, 즉 이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공동의 신체기관인 입과 이 두 가지를 표현하고 뒤섞는 도구인 혀에서 만난다." 즉 부엌이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면, 세재는 영혼을 위한 요기를 만드는 곳이다. 고즈넉한 서재에서 하는 책읽기는 영혼의 위장이 말[인식]을 집어삼키고 포만감에 이르게 하는 향연인 셈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굶주림을 견뎌라!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가의 길이 열린다.
불확실성
글을 쓰는 일은 개인적인 작업이다. 글은 남과 어울려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1934-)가 쓴 <시인이 되는 법>이라는 시의 첫 행은 "앉을자리를 만들어라."이고, 두 번째 행은 "앉아라. 침묵하라."이다. 이 내용은 시인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글을 쓸 때 오롯한 고립과 고독은 필수 조건이다. 떠들썩한 사교 현장에서는 단 몇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최소한 글을 쓰는 동만만이라도 세상과 차단되어야 한다. 나와 세상 사이에 진공 상태가 생기고 나면 집중하기가 훨씬 더 쉽다. 주의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전화기 코드를 빼고, 스마트폰도 끄고 인터넷도 꺼놓아야 한다.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제거한 후에 자기만의 지하 동굴에서 글쓰기에만 전념해야 한다. 여기서 지하 동굴이란 '자기만의 방'을 뜻한다. 꼭 '자기만의 방'이 아니더라도 카페나 도서관 등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진짜 재능
"타고난 작가는 없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재능과 훈련이 필요하다. 흔히 문학을 향한 열정이 크면 클수록 재능이 더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호한 개념이기도 하다.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훈련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는 자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이 두 가지가 글쓰기의 가장 좋은 훈련 방식이자 재능의 증명이다. 그런 훈련을 거듭하면서 글쓰기에 필요한 마음의 근육 역시 키워야 한다. 마음의 근육이란 어떤 절망에도 포기하지 않는 거. 열 번 쓰러지고도 열한 번 일에서는 불굴의 의지로 단련된 직관을 뜻한다.
마음의 근육을 키운 사람만이 영감이 고갈되거나 정신이 바짝 메말라버려도 도중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게 바로 글쓰기의 진짜 재능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쓸 수 없는 100가지의 이유를 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묵묵히 쓸 뿐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은 글을 통해 말하라. 그리고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서 학습과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열정과 의지가 부족한 탓이다. 끊임없는 훈련과 불굴의 의지 없이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지의 공포
"글쓰기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법"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나탈리 골드버그( Natslie Goldberg, 1948-)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를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골드버그가 제안하는 글쓰기 연습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손을 계속 움직여라.
2. 마음 닿는 대로 써라.
3.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4.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5. 구두점과 문장은 나중에 걱정하라.
6. 당신은 최악의 쓰리기라도 쓸 자유가 있다.
7. 급소를 찔러라.
백지의 공포를 넘어서는 좋은 방법은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날마다 쓰는 것이 습관이 되면 백지 앞에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쩔쩔매는 일은 사라진다. 날마다 써라! 그러면 백지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고 바로 글쓰기로 통하는 무의식의 통로가 열릴 것이다.
고독과 칩거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그것은 기꺼이 고독과 칩거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이다.
일찍이 어느 시인은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그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고독하다. 태어날 때, 우리는 울부짖는다. 그 부르짖음은 고독의 절규다."
인간 본질의 한 측면인 이 고독을 모른다면, 그리고 고립에 처하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문장도 쓸 수가 없다. 글을 쓰고자 한다면 고독 속에서 우주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연마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영혼이 고독할 때만이 우주의 불가사의한 힘이 그 속을 흐를 수 있고, ''그 순간에 정신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는 고독과 칩거라는 도약대를 딛고 공중으로 도약하는 것과 같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 뭔가는 써야만 한다면, 그것을 쓰면 된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많은 글들을 썼다 지워도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쓰지 않고 피해 갈 길은 없다. 누가 대신할 수도 없다. 무조건 앉아서 종이를 놓고 무언가 써야 한다. 단 플롯을 짜거나 이야기의 절정과 파국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지 말라.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첫 문장을 써라. 그래야 몸이 편해진다. 경직된 마음이 풀리고 굳은 어깨와 옥죄던 가슴도 편안해진다. 글쓰기는 일차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삶의 충만감을 위한 것이다. 글쓰기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과 위안을 준다.
글쓰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인생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어느 한 목표에 올인할 때도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비단 글쓰기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살기 위한 덕목 같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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